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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산조의 거목, 최태현 명예교수 별세: 민속악의 현대화와 계승에 바친 일생
[해금산조의 대부 최태현 교수 별세 및 업적 요약]
- 부고 소식: 해금산조 연구와 교육의 선구자인 최태현 중앙대 명예교수가 2026년 2월 20일 향년 78세로 별세함.
- 주요 업적: 짧은 산조에 머물던 해금 가락을 집대성하여 30~40분 길이의 긴 산조 체계를 확립하고 악보화함.
- 예술 활동: 1969년 '민속악회 시나위'를 창단하여 민속음악의 무대화와 사물놀이 보급 등 국악의 현대적 계승에 앞장섬.
- 계승 및 저술: 지영희류 해금산조를 정립하였으며, 『해금산조 네바탕』 등 다수의 학술적 저서를 남겨 후학 양성에 헌신함.
- 안장지: 고인은 22일 발인을 거쳐 서초동 대성사에서 영면에 듦.
우리 민족의 애환을 두 줄의 가락에 실어 보내는 해금, 그 가느다란 현 위에서 피어나는 산조(散調)의 역사는 한 거목의 헌신으로 인해 비로소 그 줄기가 굵어졌습니다. 평생을 해금의 소리를 탐구하고, 흩어진 가락을 모아 하나의 학문적 체계로 세웠던 최태현 중앙대학교 명예교수가 지난 20일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고인이 걸어온 길은 단순히 개인의 예술적 성취를 넘어, 한국 민속음악이 근대성을 획득하고 교육의 현장으로 들어오는 투쟁의 기록과도 같았습니다.
1. 12분의 한계를 넘다: '긴 산조' 체계의 확립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해금산조는 연주 시간이 10분 내외에 불과한 소품 위주의 연주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민속악의 정수로 불리는 산조가 기악 독주곡으로서의 완결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호흡이 긴 긴 산조의 확립이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고인은 스승인 지영희 선생이 하와이 이주 후 남긴 새로운 가락들을 세밀하게 분석하여, 이를 30분 이상의 대곡으로 정립하는 고된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특히 고인은 스승의 가락 70%에 자신의 예술적 혼이 담긴 가락 30%를 보태어 40분 길이의 긴 산조를 완성해냈습니다. 이는 해금산조가 가야금이나 거문고산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작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구전심수로 이어지던 가락을 오선보로 옮겨 적은 그의 악보화 작업은 국악의 기록 유산적 가치를 높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2. '민속악회 시나위'와 국악의 무대화 혁명
고인의 활동은 연구실 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1969년, 그는 동료 연주자들과 함께 '민속악회 시나위'를 창단하며 국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당시만 해도 민속악은 격이 낮다는 편견이 존재했으나, 고인은 시나위 음악을 무대화하고 사물놀이 공연을 주도하며 새로운 공연 문화를 창출해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197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번진 전통문화 계승 운동과 맞물려 젊은 층이 국악을 향유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고인이 회장으로서 이끌었던 민속악회 시나위는 박제된 전통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오늘의 음악으로서 국악이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그의 무대는 전통의 복원이자 동시에 현대적 재해석의 현장이었습니다.
3. 지영희류 해금산조의 계승과 '네바탕'의 집대성
고인은 근대 국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지영희 선생의 정통 계승자였습니다. 스승이 남긴 12분의 짧은 가락을 바탕으로 1988년 발표한 『해금산조연구』는 해금 연주자들에게는 교과서와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고인의 제자인 김애라 악장의 증언처럼, 오늘날 해금산조가 지영희류로 통일되고 체계화된 것은 전적으로 고인의 학술적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의 연구는 지영희류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한범수류, 서용석류, 김영재류 등 산조의 여러 갈래를 아우르는 『해금산조 네바탕』(2014)을 펴내며 해금산조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이는 해금 음악이 가진 다양성을 보존함과 동시에 연주자들이 폭넓은 레퍼토리를 확보할 수 있게 한 국악계의 보물과도 같은 성과였습니다.
4. 교육자로 바친 30년, 중앙대 국악 대학의 기틀을 세우다
고인은 1985년부터 2014년까지 약 30년 동안 중앙대학교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했습니다. 중앙대 국악대학장과 국악교육대학원장을 역임하며 대학 국악 교육의 체계를 정립하는 데 헌신했습니다. 단순한 기술 전수를 넘어 국악의 구성 요소와 원리를 체득하게 하려는 그의 교육 철학은 『구성요소로 보는 국악곡』 등의 저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또한 문화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무형문화재의 보존과 전승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현재 국립국악원, 시립관현악단 등 주요 국악 단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스승의 가르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 명의 연주자가 수많은 예술가를 길러내는 교육적 토양을 일구어낸 것이야말로 고인이 남긴 가장 값진 유산일 것입니다.
5. 떠나간 거목이 남긴 향기: 예술혼은 죽지 않는다
2024년 부산 극단 자갈치가 공연한 헌정 마당극 '신새벽 술을 토하고 없는 길을 떠나다'는 고인의 50년 음악 인생을 기리는 헌사였습니다. 제목처럼 고인은 아무도 가지 않았던 '없는 길'을 해금을 들고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그가 닦아놓은 길 위에서 오늘날의 젊은 해금 연주자들은 마음껏 자신의 기량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제 고인은 서울 서초동 대성사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습니다. 비록 육신은 떠났으나 그가 집대성한 산조의 가락은 제자들의 활대를 통해, 그리고 그가 남긴 수많은 악보를 통해 우리 곁에 영원히 흐를 것입니다. 해금의 두 줄처럼 전통과 현대, 실기와 이론을 단단히 엮어냈던 최태현 명예교수. 그의 예술혼이 깃든 해금산조가 앞으로도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서 깊은 울림을 전해주기를 기원합니다.